최근 백일섭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졸혼 후의 일상들을 보여주었는데요.
가족과 절연한 후, 8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딸에 대해 이야기 하며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공부도 잘했고, 현명하고 성실한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라고 소개하며, 마음과 달리 아내와의 트러블로 안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줘 딸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졸혼 후 딸과도 절연한 채 7년을 지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과거 백일섭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으며, 그에게 어떤 사연들이 가족들한테까지 큰 영향을 끼쳤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촬영 도중 청와대行
1969년 4월, 대한뉴스 제721호에 출연한 배우 백일섭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기 청와대에 초청된 소수의 연예인 중 하나였다. 백일섭은 이전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초대받아 청와대를 방문한 일화를 공개했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은 백일섭이 여수 출신임을 알고 여수국가산업단지 조감도를 보여주며 그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그는 “당시에는 귤이 희귀해서, 청와대에서 귤을 맛있게 먹었더니 육영수 여사께서 여러 개를 더 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귤들을 드라마 현장에 가져가 동료들과 나누었고, 모두가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백일섭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친근하게 ‘백군’이라고 부르며 인사했을 때 너무 긴장되어 다리가 떨렸다고 말했다. 이계인은 대통령의 아들이 백일섭을 좋아해 초대되었다고 언급했고, 김용건은 당시 백일섭의 인기를 현재의 BTS와 비교하며 칭찬했다.
백일섭은 청와대에서의 특별한 식사 경험도 공유했다. 그는 “당시에는 스테이크를 잘라 먹는 것이 어려워서 육영수 여사께서 직접 스테이크를 잘라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험이 마치 ‘최후의 만찬’과 같았다고 회상하며, 그 당시의 긴장감과 감동을 느낀 순간을 설명했다.
연예인 병에 빠져 PD에게 갑질 후 방송사에서 퇴출 당해..사업 실패로 9억원의 빚까지
1969년, 백일섭은 TBC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지만, TBC 내부의 공채 탤런트들의 반대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MBC가 TV 채널 개국을 맞아 백일섭에게 이적을 제안했고, 그는 결국 MBC로 이적하여 MBC의 개국 드라마 ‘태양의 연인들’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후 백일섭은 MBC에서 활약했으나, 한 PD와의 사소한 오해로 인해 다투게 되고, 이로 인해 MBC 드라마 출연이 중단되었다.
백일섭은 그때 과거 이영헌 PD와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이영헌 PD와 친분이 있었지만, PD가 공개적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백일섭은 “그 말을 듣고 술을 마시던 중, 화가 나서 대본을 던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영헌 PD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으며, 백일섭은 “당시의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때의 성급한 행동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 후 백일섭의 9억 빚 청산과 그의 아내 백미영과의 러브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1973년 MBC를 떠난 백일섭은 TBC로 이적하여 1980년 언론 통폐합 때까지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영화 출연도 병행했다. TBC가 없어진 후에는 KBS와 SBS를 오가며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MBC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큰 타격이었다. 특히,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에 관련하여, 제작진이 백일섭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그와 과거에 다투었던 PD가 드라마 제작국장으로 있어 고민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백일섭은 해당 제작국장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를 받아들여진 끝에 오랜만에 MBC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백일섭은 MBC에서 활동하지 못했던 기간 동안 사업에 실패하여 9억 원의 빚을 지게 되었으나, 1993년 ‘아들과 딸’ 드라마를 통해 MBC에 복귀하며 그 빚을 모두 갚았다고 밝혔다.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 최고 시청률 61%, 초대박으로 찾아온 백일섭의 ‘제2의 전성기’
드라마 ‘아들과 딸’의 성공으로 백일섭은 그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홍도야~ 우지마라~”와 같은 여러 유행어를 만들며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친근한 외모 덕분에 주로 친절하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서민 어른 역할을 자주 맡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백일섭은 힘센 ‘마초남’ 스타일의 캐릭터였다. 9년간 우루사 광고의 얼굴로 활약했고, 그 당시의 대표적인 대사는 “허허, 곰이라구요.”였다. 젊은 나이에 영화에 출연했을 때의 벗은 상반신 사진에서는 그의 팔뚝과 근육이 눈에 띈다. 백일섭은 악역이나 깡패 역할도 소화했는데,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동혁 역할이 대표적이다. 여주인공을 스토킹하고 폭행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연기는 매우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중년 이후에는 이미지가 바뀌어 더 많은 정의로운 역할을 맡았다. KBS 드라마 ‘포도대장’에서는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대명’에서는 임경업 장군 같은 영웅 역할을 소화했다.
또한, 백일섭은 동안 외모 덕분에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솔약국집 아들들’, ‘엄마가 뿔났다’ 등의 드라마에서 김성겸, 변희봉, 이순재 같은 10살 차이도 나지 않는 배우들의 아들 역할을 맡았다.
한여자만 사랑한 순정남 백일섭의 러브 스토리
백일섭의 결혼 스토리는 많은 루머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한 순정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젊은 시절 유명세를 타며 명동에서 활동하던 그는 ‘명동 빗자루’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많은 여성들과의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22살이었던 백일섭은 술자리에서 여성들을 만나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삶이 36살 때 크게 변화했는데, 바로 현모양처인 채미영 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채미영 씨는 중앙대 가정과 출신으로, 백일섭보다 10살 연하였다. 백일섭이 배우였기 때문에 그와 차를 마시는 여성과는 자주 열애설이 불거졌고, 이 때문에 처가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1977년 결혼에 성공해 아들과 딸을 두고 4인 가족을 이루었다.
백일섭 졸혼 이유, 그 후 딸과 절연.. 나는 ‘나쁜 아빠’였다
2017년에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백일섭은 자신의 졸혼 상태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백일섭 본인은 졸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방송사에서 그의 상황을 졸혼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실제로 백일섭의 경우는 이혼이나 별거가 아니라 졸혼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백일섭은 졸혼의 가장 큰 이유로 자신이 배우로서 집에서 충분한 대우와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결혼 생활 중에는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결국 2015년에 그는 집을 나와 졸혼을 선택했다. 그는 졸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재 백일섭은 2017년부터 아내 채미영 씨와 별거 중이며, 이 과정에서 딸 백지은 양과의 관계도 멀어져 현재까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백일섭의 아들 백승우 씨와 그의 가족은 백일섭과 여전히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백승우 씨는 아버지의 졸혼 결정을 존중한다고 언긘했다.
백일섭의 최근 근황으로는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가족한테도 영향이 갔던 백일섭의 안타까운 유년 시절 이야기..
백일섭 배우의 졸혼 배경에는 그의 가정사와 관련된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1944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백일섭은 무역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백일섭의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으로, 서로 다른 세 명의 어머니에게서 총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백일섭은 두 번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동생과 세 번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여동생 세 명, 그리고 새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또 다른 형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 구조에서 백일섭은 어린 시절 많은 반항과 싸움을 겪었다고 한다. 어느 날 친어머니가 집을 떠난 후, 그는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운 유년 시절의 경험은 백일섭이 졸혼에 이르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그는 술에 의존하며 가족으로부터의 관심과 인정을 갈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백일섭과 그의 가족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로 여겨진다.